소비자평가 김유나 편집장

길고 길었던 한 해가 '하얀 소(辛丑)'의 등장으로 꼬리를 감췄다. 2021년 새해가 밝았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19의 기세로 오프라인의 일상은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중이다. 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많은 기업들이 한 해의 경영 계획을 수립하게 되는데, 올해의 목표 리스트에는 코로나 19로 붉어진 이것이 1순위로 등장할 가망이 크다. 바로 '디지털 마케팅'이다. 사실 디지털 마케팅이 비즈니스의 일선에 등장한 것은 벌써 20년도 더 된 이야기이다. 새로운 것 없는 디지털 마케팅이 4차 산업혁명이 가열차게 불붙고 있는 2021년도에 다시 각광을 받는 이유가 뭘까?

 

이 질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기 전에 '디지털 마케팅'에 대해 통용되는 정의가 있는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누군가는 디지털 마케팅을 퍼포먼스 마케팅을 통한 퍼널(funnel) 관리라고 하고, 누구는 SNS 채널을 통한 고객 소통으로 이야기한다. 기업을 운영하는데 있어서 업(業)의 정의를 제대로 내리고 있는 것만큼 경쟁력 있는 것이 없고, 업의 정의대로 유관 부서들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게 하는 것만큼 분산된 힘을 모으는 방법이 없는데, 디지털 마케팅을 거론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스콥(scope)과 방향(direction)이 각기 다른 느낌이다. 달을 가리키고 있지만 누구는 달을 바라보고 누구는 달을 향해 뻗은 손끝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 디지털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고나 할까.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디지털의 출발은 인터넷과 맥을 같이 한다. 1995년도에 윈도우가 들어오면서 검색 포털을 중심으로 인터넷 광고가 시작되었고, 인터넷으로 물건을 사고 파는 전자상거래가 생기면서 배너광고, 검색광고 등의 온라인 마케팅 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엄밀히 말해 인터넷 마케팅과 디지털 마케팅이라는 용어가 분리ㆍ혼용되기 시작한 것은 모바일폰이 들어온 2009년부터이다. 그로부터 10년, 지금의 디지털 마케팅은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가벼운 버전 정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더해지며 그 개념이 혼용되어 쓰이는 실정이다.

 

변화가 생기는 시점에는 언제나 혼동이 존재한다. 어찌 보면 서로 다른 두 개의 사물을 한 바구니에 담다 보니 이런 혼선이 생기는 게 아닌가 싶다. 개념의 혼재 때문인지 디지털 마케팅 하면 여전히 풀기 어려운 숙제처럼 느껴진다.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하지?"는 디지털 마케팅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기업들이 통상 갖는 질문이다. 정확히 우리가 하려는 게 무엇인지 알아야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럼 디지털이라는 개념이 주는 혼동의 실체를 살펴보자. 여기 디지털 마케팅을 보는 두 가지의 시선이 있다. 하나는 디지털 마케팅을 '인터넷 사이트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마케팅 프로모션 전략'으로 보는 것이다. 우리 타겟이 많이 사용하는 SNS, 블로그, 까페, 신문 등의 온라인 사이트를 대상으로 타겟을 선정해서 그들을 유인할 수 있는 메시지를 보내고 구매를 독려하며 그들과 계속 소통하는 업무를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들은 마케팅의 많은 업무들 중에 디지털에 특화된 영역에 국한된 것으로 종결된다.

 

또 다른 시선이 있다. 디지털을 '0과 1의 숫자로 표현하는 일'이라는 본원의 의미로 접근하는 방법이다. 숫자는 곧 정량화를 의미하므로 모든 업무를 측정 가능하고 관리 가능한 것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관리의 영역으로 들어서는 순간 디지털은 좀더 큰 옷을 입게 된다. 이러한 시선에서는 디지털이 사업의 수익을 개선하고 창출할 수 있는 경영의 영역에 속하게 된다.

 

디지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기업이 추진해야 할 과업과 목표는 확연히 갈린다. 마케팅 관점에서는 디지털 마케팅을 수행하는 부서가 주로 퍼포먼스 마케팅, SNS 마케팅, 콘텐츠 마케팅 등의 업무를 다루면서 궁극적으로 구매 전환율을 높이고 고객 유입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면, 경영 관점에서는 생산 관리, 유통 관리, 고객 관리 등의 차원에서 디지털을 활용하여 기업의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프로세스로 업무가 진행되는지를 살핀다. 디지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갈 길이 달라지게 된다.

 

디지털에 대한 두 개의 시선은 목표 설정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기업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데이터 활용에 대해서도 차원이 다른 솔루션을 제안한다. 마케팅 관점에서는 디지털 생태계에서 움직이는 고객행동 패턴을 발굴하고, 미래 행동을 예측하고, 더 나아가 인공지능을 활용한 개인 최적화된 맞춤 솔루션을 제안하는 퍼포먼스 기반의 성과 분석을 중요하게 다룬다. 반면, 경영 관점에서는 프로세스 자동화ㆍ지능화로 효율을 극대화하는 스마트 팩토리 구축, 다양한 데이터를 연결한 오픈 콜라보레이션의 비즈니스 모델 혁신, 고객 경험 데이터를 활용한 제조의 서비스화 등 소위 경영 혁신을 위한 솔루션에 데이터 역량을 집중한다. 이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주요 과업들이다. 디지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데이터 활용 역시 달라지는 것이다.

 

디지털에 대한 관점이 원천적으로 빚어내는 차이는 무엇보다 기업의 혁신 방향을 다르게 결정짓는다는 데 있다. 마케팅 관점에서는 더 나은 상품을(high quality), 더 싼 가격에(low cost), 더 빠르게 배송(fast delivery) 하기 위한 개혁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무엇을(what)', '어떻게(how)' 서비스 할 것인가의 문제에 해당한다. 반면, 경영 관점에서는 생산성과 효율을 향상시키는 제조의 혁신, 초연결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신규 수익원을 창출하는 업(業)의 혁신, 고객 중심의 가치 창출을 통해 맞춤형 상품ㆍ서비스를 제공하는 고객 혁신이 주요 관건이다. 이는 '무엇을', '어떻게'에서 더 나아가 '왜(why)'에 대한 고민을 통해 본질적인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디지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무엇을 바꿀 것인지에 대한 의사결정까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팬데믹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 19 사태로 인해 디지털 사회로의 전환이 가속화되었다는 이야기에 더는 놀라움도 없다. '골든타임'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이제는 경영과 마케팅에 디지털의 도입이 필수불가결한 사항이 되었다. 올해부터는 크고 작은 규모에 상관없이 많은 기업들이 각자의 디지털 솔루션을 찾는데 사활을 걸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많은 기업들이 자신 기업에 맞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무엇일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서 성과로 만들어내려는 고충을 겪게 될 것이다. 이미 적지 않은 기업들이 '기술'이라는 함정에 빠져 시행착오라는 긴 터널을 거쳐오고 있다. '당장'이라는 시간에 쫓겨 디지털 솔루션에 대한 규정과 방향을 명확히 설정해두지 않으면 동상이몽이라는 오류 속에서 명쾌한 걸음을 내딛기 어려울 수도 있다. 더 이상 디지털은 마케팅 만의 용어가 아니다. '디지털 마케팅'이라는 단어 안에 변화의 패러다임까지 내포되어 있는 만큼, 미시적인 관점과 거시적인 관점에서 디지털을 바라보고 이에 따른 솔루션을 찾는 혜안이 필요하다. 처음 가보는 길에 어디가 지름길인지 알 수 있겠냐 만은 가장 빨리 가는 길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에 있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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