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째 이어져온 맛집’, ‘4대째 전해져 내려오는 비법’. 흔히 사람들은 맛있는 식당을 검증할 때 ‘몇 대째’인가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 식당이 얼마나 오랜 기간동안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지, 얼마나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맛에 대한 하나의 보증으로 여기는 것이다.

기업의 가족 경영이 갖는 힘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같은 피가 흐른다는 공통점 하나 만으로 완전한 신뢰 관계를 쌓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가족이다. 가족 경영 기업의 구성원들은 공적인 업무 관계에 놓인 기업 구성원들보다 기업에 대한 애착이 크다.

이러한 점에서 기업의 가족 경영은 상당한 경쟁력을 가진다. 가족이 기업의 직접적인 관리자이자 소유자로서 존재한다는 사실은 구성원이 기업의 성장에 기여하도록 하는데 동기 부여가 된다. 비가족 경영 기업의 구성원에겐 개인적인 차원에서 수입을 벌어들이는 것이 우선이 된다. 분기별 성과에 따라 급여가 결정되기 때문에 기업의 지속적인 발전보다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는 단기적 수익 창출을 중시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가족 경영 기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의 발전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가족이 기업을 경영하면 기업의 발전은 업무적인 차원의 경제적 수단을 넘어서게 된다. 기업 경영에 자신의 가문과 관련된 개인적인 관계가 얽혀 있어 이에 대한 책임과 사명감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기업의 성장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게 된다.

가족이 경영하는 기업은 대개 장수 기업인 경우가 많다. ‘장인 정신’을 앞세워 가업을 이어가는 유서 깊은 기업들은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으며 동시에 해당 분야의 대표로서 명성을 가지게 된다. 특히 다수의 세계적인 기업들이 가족 경영 방식을 택하고 있어 그 효율성 또한 입증돼 왔다. 각 분야에서 대표적인 입지를 차지한 타이어 제조 회사 ‘미쉐린(Michelin)’과 화장품 업체 ‘에스티 로더(ESTÉE LAUDER)’ 또한 가족이 대를 이어 경영해 온 기업들이다.

사진 출처: 미쉐린코리아 공식 홈페이지

1889년 프랑스에서 앙드레와 에두아르 미쉐린 형제는 타이어 회사 미쉐린을 창립한다이후 미쉐린은 지금까지도 미쉐린 가문의 후손들이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미쉐린의 성공에서 핵심적인 요인을 꼽자면 단연 혁신 기술이라 할 수 있다매년 R&D 부문에 연간 매출액의 약 5%라는 상당한 액수를 투자해온 미쉐린은 혁신적인 제품으로 정평이 나있다현재 타이어 시장의 타이어 중 95% 이상을 차지하는 래디얼 타이어와 최초의 친환경 타이어인 그린 타이어는 모두 미쉐린에서 개발한 제품들이다이전까지의 타이어 시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선보이는 미쉐린의 창의성의 토대에는 가족 경영이 있었다기업의 혁신적인 행보를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대담한 경영 태도가 중요하다이러한 점에서 미쉐린의 3세대 경영자 프랑수아 미쉐린 전 미쉐린 회장의 독립적인 리더십은 타이어 시장 개척에 효과적이었다당시 프랑수아 미쉐린과 미쉐린 일가의 사람들은 과반수 이상의 의결권을 가지고 있었다이러한 독립성이 빠르고 과감한 의사 결정을 가능하게 하여 새로운 사업 방식의 채택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Victor Skrebneski 가 찍은 에스티 로더 여사/ 사진 출처: 에스티 로더 공식 홈페이지

미국 내 1위의 화장품 업체 에스티 로더는 1946년 에스티 로더와 남편 조셉 로더가 창립한 화장품 브랜드다. 에스티 로더는 브랜드의 차별화를 위해 힘쓴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다른 경쟁사들이 약국에서 화장품을 판매할 때 에스티 로더는 브랜드 고급화 전략으로 백화점을 유통 채널로 하여 향수를 판매하였다. 직원 교육과 광고, 판촉 전략까지 아우르는 그녀의 독보적인 경영 방식으로 에스티 로더는 고유한 브랜드 이미지를 갖추며 급성장하였다. 이러한 에스티 로더의 노력은 아들 레오나드 로더와 손자 윌리엄 로더가 계승하고 있다. 레오나드 로더는 그의 어머니처럼 전 세계 에스티 로더 매장의 직원 교육을 직접 담당하였으며 창업 초기에 만들어진 판매 매뉴얼을 개정하는 등 에스티 로더의 창업 정신을 고스란히 이어갔다. 이는 로더 가문의 경영진들이 에스티 로더가 일궈낸 가업에서 가문의 정체성을 찾고 이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기업의 가족 경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한다. 특히 우리나라 대기업의 가족 경영을 나타내는 ‘재벌’이라는 용어는 권력과 재력을 독점하고자 하는 기업의 폐쇄적인 소유경영을 의미한다. 이러한 재벌의 독점적인 기업 경영 방식은 대를 이어 축적된 부가 다시 경영권 계승을 통해 가족에게 이어져 내려가는 구조를 고착화한다. ‘금수저’와 같은 용어가 만들어지듯 부의 대물림 등의 사회 비판적인 현상이 왜곡된 기업의 가족 경영 방식에서 비롯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쉐린, 에스티 로더와 같이 건설적인 방향으로 진행되는 기업의 가족 경영은 경쟁력 있는 경영 전략으로서 힘을 가진다. 기업의 고유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장기적인 성장을 이뤄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족 경영이 효과적인 기업 경영 방식임은 분명하다. 건설적인 방향의 가족 경영은 기업이 폐쇄적인 경영 구조를 탈피하고 권력과 부의 독점이 아닌 경영의 효율성을 추구하려는 태도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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