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시대가 발전할수록 인문학은 더욱 중요해질 것...투자해야

출처: 애플

스티브잡스와 애플의 성공으로 대변되는 인문학 정신, '인문학 마케팅'은 우리 사회에도 큰 파장을 일으키며 인문학 열풍을 불 지피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세계적인 경영컨설팅 기업인 맥킨지에는 인류학 전공자만 270명이 일하고 있으며, 미국의 양대 뮤추얼 펀드 회사 중 한 곳인 피델리티자산운용(Fidelity)의 경우 CEO가 예술사를 전공했을 뿐 아니라 직원 중 ‘영문학’ 전공자는 1,138명이다. 이와 비교해 재무 전공은 1,186명, 경제학 전공은 1,145명이다. 또 경영 및 회계 컨설팅 업체인 딜로이트는 입사시험에 예술 과목을 추가했으며, 이베이, 드롭박스, 스냅챗, 그리고 트위터에 초기 투자한 것으로 유명한 벤처 캐피털리스트 매트 콜러는 예일 대학교에서 음악을 공부했고, 피터 펜턴은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또한 페이스북은 초창기 생각을 뒤집어 광고, 마케팅, 사업개발 부서에 수천 명에 달하는 인원을 채용하고 있다. 그들은 페이스북의 상징과도 같은 후드티 걸친 엔지니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즉 기술 광신도 집단과도 같은 페이스북도 소프트웨어 코딩 기술이 포용하지 못하는 가치 있는 재능을 보유한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이렇게 요즘은 인문학이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하면서 기업들은 너나없이 '인문학 정신'을 내세운 '인문학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 중이다.

 

 

-놀이’의 핵심을 파악한 레고

출처: 레고 홈페이지

세계 2위 장난감 회사인 레고 역시 인문과학적 통찰력을 이용해 고객의 심층 동기를 파악해 회생에 성공했다. 8년 전만 해도 레고그룹은 매출 부진과 심각한 자금난에 빠져 있었다. 당시 경영진은 블록 장난감의 주 고객층인 어린이와 부모들이 무얼 원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자사의 브랜드 파워만 믿고 캐릭터 인형과 비디오 게임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레고 경영진은 아이들의 관심이 점점 더 화려한 비디오 게임으로 쏠리면서 전통적인 플라스틱 블록을 가지고 놀 만한 시간도, 인내심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전보다 훨씬 모양이 예쁘지만 아이들의 시간과 창의력은 덜 요구하는 형태의 제품들을 출시했다. 그러자 레고라는 브랜드에 대한 부모 세대의 향수가 사라지면서 아이들에게 블록을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없어졌다. 매출은 급격히 줄었다.

상황이 악화되자 경영진은 브랜드와 소비자 간의 관계에 문제가 생겼음을 인정했다. 신제품 라인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이들은 그룹 차원에서 ‘놀이’라는 현상을 심층적으로 이해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인문학자로 구성된 연구진을 미국과 독일로 파견했다.

연구진은 몇 달 동안 두 나라의 어린이 및 부모들과 인터뷰하고 쇼핑몰과 완구점에서 사진과 영상물을 촬영하며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했다. 이 데이터를 정리하자 그동안 레고 경영진이 생각했던 것과 정반대의 사실이 밝혀졌다.

아이들이 ‘놀이’를 하는 이유는 자극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도하게 짜인 생활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기술을 연마하기 위해서였다. 즉 현대의 아이들이 너무 바빠서 레고를 가지고 놀 수 없다거나 복잡한 블록을 조립하기 싫어할 거라는 기존 생각이 틀렸던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블록을 가지고 놀 시간과 레고 조립 기술을 습득하고픈 욕구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있었다. 이는 일반적인 시장 데이터 분석, 컨조인트 분석, 설문조사 등 경영학적 기법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통찰이었다.

이런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레고는 조립 블록이라는 핵심에 충실한 제품을 내놓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기업 슬로건도 새로 만들었다. “레고의 본질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레고를 만들자”였다. 새로운 슬로건과 전략에 따라 좀 더 조립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블록 제품들을 출시했고 이는 전 세계 어린이들과 부모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의료기기 전문업체, 콜로플라리스트

출처: 콜로플라스트

덴마크의 의료기기 전문업체인 콜로플라스트는 1954년부터 위암, 직장암 환자들이 사용하는 인공항문과 배변주머니를 만들어온 회사다. 2008년 이후 성장이 정체되는 상황에서 이 회사는 신제품 개발과 영업에 많은 투자를 했지만 매출은 더 오르지 않았다. 대대적인 설문조사를 벌여서 환자들의 불만사항을 상당 부분 수정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한 것 같았다. 경영진은 인문사회과학 연구진에게 이 문제를 맡겼다.

연구진은 인공항문을 부착한 사람들,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그들을 담당한 의료진과 이틀씩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얻은 사진, 영상, 면담기록들을 가지고 여러 가지 사회과학 이론을 적용해 다양한 관점에서 데이터를 분석했다. 만성질환이 환자의 정체성과 사회적 지위에 미치는 영향, 위생과 성생활, 주변 사람들과의 신뢰 관계 등을 조사했다.

 

연구진은 인공항문을 단 수많은 환자들이 배변주머니가 새는 상황을 걱정하면서 아예 외부 출입을 꺼리고 집 안에만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집 안에만 있으면 배변주머니가 새더라도 큰 걱정이 없다. 따라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더 이상 환자들의 불만사항 접수가 없어지므로 회사 측에서는 제품에 문제가 없다고 잘못 판단해온 것이다.

사회학적 연구를 통해 환자들이 여전히 배변 누출에 대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음을 깨달은 콜로플라스트는 누출에 대한 우려를 완전히 막기 위해 개인 체형에 따른 맞춤형 배변주머니 제품을 개발했다. 이 보디핏(BodyFit) 제품 라인은 2010년에 출시됐고 대성공을 거뒀다. 인문학적 통찰력이 또 한 번 힘을 발휘했다.

 

 

-무인양품(無印良品·MUJI)의 인문디자인

출처: 무인양품

무인양품의 디자인 철학자 하라 켄야는 노장사상에서 비롯된 없음의 철학과 비움의 효용을 찾았다. 특징이 없기 때문에 특징 있는 것과 어우러질 수 있고 비어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는 없음의 철학을 텅 빈 그릇으로 시각화 하고, 절제와 생략으로 무인양품을 디자인했다. 무인양품은 따라서 단순한 미니멀리즘이 아닌, 없음의 철학을 비움의 디자인으로 구현한 문화디자인이자 인문디자인이다.

창립 후 매출을 늘리며 순항하던 일본 무인양품은 2001년 38억엔(약 380억원)의 적자를 내며 추락했다. 하지만 인문디자인으로 ‘없음’의 철학을 보여줌과 함께 세 가지 꾸밈을 생략하는 '3무(無) 전략'을 실행해 28개국, 900여 매장에서 약 3조4000억원(2016년 기준)의 매출을 올렸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픽사

출처: 픽사

<토이스토리>, <카>, <몬스터 주식회사> 등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픽사는 1996년부터 임직원을 대상으로 ‘픽사 대학(Pixar University)’를 운영하고 있다. 당시 사장이던 에드윈 캣멀(Edwin Catmull)이 직원 대상 데생 클래스를 연 것이 발단이 되어 지금은 100여 개의 예술 강좌를 갖춘 ‘예술 대학’으로 진화하였다.

픽사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몇몇 우수 직원에 의존하여 스토리를 개발하지 않는다. 제작팀에서 충분히 아이디어를 뭉치고 시너지를 발휘하여 세계인들에게 인정받는 작품을 만들어 낸다. 이는 전 직원이 예술적 영감을 가져야 한다는 가치 아래 운영되는 픽사 대학의 목적과도 부합한다.

이를 위해, 픽사 대학은 애니메이션 제작에 관여하는 직원들은 물론, 엔지니어, 마케터, 요리사, 행정팀 직원 등 다양한 직군의 직원들에게도 배움의 기회를 열어두었다. 개설된 강좌 역시 조각, 회화, 연기, 명상, 댄스, 발레, 영화 제작, 디자인, 색상 이론 등 예술 활동 전 범위에 걸쳐 갖춰져 있는데, 이렇게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접하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픽사의 임직원들은 이를 다채롭게 융합, 응용하여 작품에 적용할 수 있다.

픽사 대학의 순기능은 직원들이 일터에서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강좌에 참여하는 직원들은 수업 시간에 서로의 작품에 대해 비평하며 효과적으로 팀워크를 유지하는 법을 배운다. 흔히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아트웍에 대한 비평을 공격으로 받아들이거나 쉽게 받아들이지 못해 개인주의로 흘러가는 경향이 발견되는데, 픽사의 직원들은 이러한 수업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건설적인 방법으로 아이디어를 개선하는 방법을 자연스레 익혀 나간다. 이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인문학의 목적과 맞닿아 있으며, 픽사 대학이 가르치는 중요한 무형의 자산 중 하나이다.

 

 

 

-왜 인문학인가?

‘왜 인문학적 감각인가’ 책 저자 조지 앤더스는 이에 관해 인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사실과 공식들로 두뇌를 채우기보다는 분명한 해답이 없는 현상들을 추적한다고 얘기한다. 그래서 어느 것이 진짜이고 어느 것이 가짜인지, 어떤 것이 설득력을 갖고 있고 어떤 것이 소용없는지, 어떤 것이 이롭고 어떤 것이 해로운지를 판단할 수 있을 만한 상황 분석능력을 기르게 된다. 이들은 또한 인간에 대한 호기심, 창의적 사고, 공감하는 능력을 갖춘다. 따라서 “인간을 이해하고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을 잘 알고 있고, 기업들은 이런 사람을 현재 원한다. 꾸준히 은밀하게 연마한 탄탄한 인문학적 내공은 인공지능 시대에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고 혹자는 이야기 한다.

 

인문학은 그 효과를 정량적인 방법으로 측정하기 매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경영인이 인문학에 대한 투자를 망설이고 있고, 또 필요성을 느낀다 하더라도 어디서부터 어떻게 실행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인문학이 기업 경영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동안 기다릴 수 있는 인내도 필요하다. 인문학은 단순 기술이 아니기 때문에 빨리 습득할 수 없을뿐더러, 다른 학문 분야와 경영, 기술과 융합하는 과정에서 무르익는 과정과 시간이 필수적이다. 그렇기에 직원들이 인문학적 소양과 능력을 키워주고 싶다면, 최고 경영층에서 지속적인 투자와 사내 교육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앞으로 경영환경이 불확실해질수록 고객의 욕구가 다양해질수록, 문화 콘텐츠와 미디어가 발전할수록, 인문학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과거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미래를 예측하고,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고찰을 통해 이면의 숨은 욕망을 찾으려 할 것이며, 더 흥미 있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찾아 여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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